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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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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1.생명의 떡을 나누는(성찬) 의미에서의 설교.

우리는 어릴때부터 학교에서 수업을 받아왔기 때문에 누군가 앞에서 말하면 그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나는 배워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 예배중의 설교도 목사님은 가르치는 사람이고 우리는 배우는 사람이므로 듣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같다.

 

그런데 예배중의 설교는 일반 강의와는 의미와 목적이 다르다.

우리는 흔히 예배시간에 설교를 듣는것은 말씀을 배우는 것이고, 성도의 교제는 예배 끝나고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것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성경과는 거리가 있는 이해다.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생명의 떡인 말씀을 나누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그 자체가 성도의 교제의 핵심이며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때와 여건과 상황이 바뀌어서 예배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 있는 근본적인 의미와 목적은 여전히 우리에게서 지켜져야 한다.

 

 

교회는 초대교회때부터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며 성찬을 나누었다.

이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 우리의 생명에 필요한 양식을 계속 공급하심을 나타내는 성례이다. 그리고 그 몸을 떼어 먹으므로 그 몸에 모두가 연합되었다는 의미도 갖는다.

떡을 떼고나서 말씀의 강론을 했는데 여기에도 성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의 몸을 나누는 것은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 먹는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말씀의 성찬이 오늘날의 예배에서 설교가 담당하는 역할이다.

 말씀을 선포하고 화답하는 그것이 생명(떡)을 나누는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설교를 가르친다고 표현하지 않고 "나눈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설교자의 입에서 그 선포가 나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형제,자매들이 그 선포에 아멘으로 화답할때 바르게 완성되는 것이다.

이로써 떡을(생명) 나누고 그 말씀안에서 연합되는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살펴보자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많이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예배 중간중간에 회중이 모두 함께 따라서 아멘으로 화답하는 순서가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교제라는 것이 너무 형식적으로 치우치면 친밀감이 떨어진다. 형식적으로 정해진 때에만 표현을 하게 되면 영적인 소통이 자유롭게 일어날수가 없다.

꼭 설교자가 한마디 할때마다 큰소리로 아멘을 해야하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선포에 동참하고 동의한다는 표현으로서 회중전체의 질서와 설교자의 리듬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공감이 되는데로 자유롭게 화답의 표현을 할 수 있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전14:16)

사안과 중요성에 따라 아멘을 크고 힘있게 할수도 있고, 작지만 단호하게 할수도 있다. 서로 떡을 나누는 교제이므로 원칙적으로 설교자와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면 된다고 본다.

 

 

그러나 그 선포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목사가 크게 하라고 하니까 무조건 "아멘, 아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크게 "아멘, 아멘" 하다가 보면 인간에 의해 왜곡된 말을 군중심리에 휩쓸려 진리인것처럼 받아들일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하면 그것을 옳은것으로 믿고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가장 잘 이용했고 가장 처절한 폐혜를 남긴것이 히틀러와 나찌의 역사다.

이런 집단적인 심리현상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단과 건강하지 못한 가르침에 빠진 교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중 하나가 전체가 무조건적으로 큰소리로 아멘을 외친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자라도 옳은 말들만 할수는 없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인간에게는 무조건적 이라는 말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통제력과 분별력이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믿음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자율적 의사와 표현이 존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식품을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이 든것이나 불량식품을 먹지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멘을 바르게 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멘 하지 않아야 할때 하지 않을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선포를 골라낼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거룩하신이의 기름부음이 있으므로 모든것을 알수있다고 말한다(요일2:20)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바르다면 성경적인 지식이 모자라도 분별할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지식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겸손하게 분별하고 절제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대하는 설교자의 경우 가능한 한 크게 아멘을 하고 화답하려고 한다.

(이는 내가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잘 하려고 노력을 하고자 한다는 뜻으로 적는 글이다.)

그것이 마음을 다해 기도로 준비한 설교자가 어색하지 않고 담대할수 있도록 하는 설교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중간에 이상하거나, 몇번 들어봤는데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조심스럽게 아멘을 한다.

그러다가 그 설교자 자체의 정체성에 의심이 가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아멘을 하지 않는다.

 

 

설교자가 똑똑하고 지식이 많아서 짜임새 있는 설교를 하는것, 카리스마 있는 설교를 하는 것등 설교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복음을 선포하는가? 그가 밟고 있는 말씀의 기반 즉 정체성과 소속이 분명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함과 조심성이 있는가? 라는 태도를 살펴보고 의심이 가면 그 의심이 풀릴때까지 아멘을 조심스럽게 하거나 안한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거짓선지자와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을 분별하라고 경고하고 있다.(마7:15,행20:29-30,살후2:1-2,딛3:10 등)

초대교회때보다 훨씬 더 교묘해지고 숫자도 많아진 이단이 판을치고, 교회 내에도 변질된 복음과 변질된 선포자들이 많이 있다.

육신의 생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영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일인데 조심성 없이 소홀하게 받아들일수는 없는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떼어먹고 주님의 몸에 연합하고, 생명의 떡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여 연합되듯이, 마귀의 꾀임으로 변질된 선포에 아멘으로 화답하면 거기에 연합될 수 있는 것이다. 알건 모르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선포된 대로 이루어 가는 힘이 있다.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말씀의 선포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적인 음식을 섭취하고 걸러내는 기관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므로 신중하게 해야 하며 성의를 가지고 해야 한다.

잘못된 선포는 걸러낼줄 알아야 하고, 바른 선포에는 은혜롭게 화답할 줄 알아야 한다.

 

 

 

2. 영적전쟁으로서의 설교.

말씀의 선포는 영적인 공격으로서의 의미가 있다.(엡6:17)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면 그 자체가 세상의 권세를 부수고 죽음에 사로잡힌 자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내서 영적전쟁을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싸우고 승리하는 것이다.(고후10:4) 그 싸움에서 우리가 할일은 바른 말씀의 기반에 서있는 것이다(마7:24, 고전3:11)

 

 

그 전쟁에서 영적인 공격의 일환으로 나는 아멘으로 힘있게 그 선포에 동참하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말씀, 그리고 사람의 본성에는 거리끼는 부분이 있으나 하나님이 듣기를 원하시는 말씀 등에는 더 큰소리로 힘 있게 아멘을 외친다.

전혀 내가 실행하지 못하는 말씀 앞에서는 아멘이 망설여 질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아멘 할수 있는 것도 내 실력으로 하는게 아니다. 예수님이 피로 덮어주시기 때문에 할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아멘은 거의가 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라는 뜻에서의 동의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희망적이고 의지적인 표현이다.

지금의 나는 부족해서 할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가실것을 믿는다는 뜻에서 하는 아멘이다.

 

 

그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의 설교는 교회 전체의 신앙고백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성질도 가지고 있다.  그 신앙고백에 연합되는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아멘’은 매우 의미가 있다.

 

 

세상의 전쟁에서도 작전본부와 지도자에 대한 공격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는 영적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기독교회가 가장 치열하게 치러왔고 또 지금도 치르고 있는 싸움은 잘못된 가르침과의 싸움이다. 마귀는 치열하게 진리를 다루는 자리를 공격한다.

이는 우주적인 교회뿐만 아니라 각 개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선포하기를 원하시는 말씀과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말씀은 다르므로

말씀 선포자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포할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좋아 하는 말들을 섞을 것인가에 관한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도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선포자의 자리는 항상 고독한 전쟁의 자리일수 밖에 없다.

 

말씀선포사역을 목사,전도사등 목회자들만이 하는 사역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의 생명이 되는 말씀의 순결한 선포를 위한 사역은 교회 전체가 치러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싸움이다.(엡6:19,골4:3등)

마귀의 입장에서는 그자리를 부수면 전쟁의 큰흐름을 바꿀수 있기 때문에 다른 진지보다 수십배의 화력을 쏟아붇는다.

영적으로 중요한 진지에서 일을 하다가 보면, 전혀 이유없이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쉽게 교만해지기도 한다.

"나같은 것이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이런 말씀을 어떻게 선포하나?"라는 정죄감 죄책감 등이 시도때도 없이 몰려들기도 한다.

멀쩡하던 목사들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것에는 이런 맥락도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설교자에 대해 더 강하게 기도해줘야 하고 더 조심성 있는 눈으로 바라봐줘야 한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자리에 있는 분들은 본인들도 그 사역의 배후에서 공격하는 마귀의 공격에 민감하게 깨어 싸울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목사라는 자리는 아무나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소명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함부로 하려고 나서서도 안되며,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자리는 자기만 죽어서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남들까지 죽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교회의 설교강단이 변질되고, 목회자가 넘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의 80프로 이상이 기도하지 않은 성도들에게 있다고......,

설교자의 설교의 질은 성도들의 기도의 양과 비례한다고......,

성도의 믿음과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영적인 전쟁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혹여 개인적으로 자기가 속한 교회의 설교자가 밉더라도 그 설교자에 대한 기도를 1순위로 두게 되어있다.

미운건 미운거고, 그 말씀은 내 육신의 건강보다 훨씬 중요한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으면 내가 죽고 그것이 약해지면 내가 병들기 때문이다.

 

영적인 눈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말씀의 빈곤이 육신의 가난이나 질병보다 훨씬 무서운 재앙이라는 것을(암8:11)

 

사람은 떡으로 못산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 그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대한 기도를 어찌 게을리 할수 있겠는가?

내 몸의 건강함을 위한기도, 행복을 누릴 가정에 대한 기도, 먹고 살 밥줄에(직장)대한 기도등등 보다.

교회의 강단의 강건함, 그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의 강건함을 위한 기도를 먼저 해야 한다.

이것이 우선순위를 바로 아는 사람들의 태도이다(마6:33)

 

그렇게 우선적으로 말씀을 위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마귀의 진을 향해 선포되는 말씀의 공격에서도 힘 있게 아멘으로 동참할수 있다.

 

 

 

*** "아멘"의 의미와 용례***

1. 원어적 의미

히브리어 "아멘"은 "확실하게 하다","지지하다", "신뢰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만"에서유래한 부사어로서"진실로"(truly),"지지하다"(support),"신뢰하다"(trust,beleve)라는뜻을가지고 있다. 즉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할 때 또는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신뢰(信賴)를 표현(表現))할 때 사용한다.

2. 아멘의 용례

이 말은 대개 기도나 찬양, 또는 법령의 선포 말미에 붙이는 종결어로서 "참으로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옵니다"는 의미(意味)로 사용 되었다(대상16:36, 느8:6, 시41:13, 72:19). 따라서 청중(聽衆)들이 "아멘"이란 말로 지도자의 말에 화답할 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① 지도자(指導者)가 선포한 어떤 법이나 기도 및 찬양 등을 지지하거나 확인, 또는 시인함을 의미한다(민5:13, 신27:15-26).

② 그것에 마음으로 복종하며, 자신의 삶 속에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경의의 의미를 내포한다

(왕상1:36, 렘11:5). 한편 "아멘"의 신약적 용례도 위에서 언급한 구약적 용례와 동일하다(고전14:16,고후1:20).즉 이말은 송영(롬11:36), 축사(롬15:33), 서신서의 맺는 말(히13:21, 벧후3:18, 유25)로 사용되었다.

3. 아멘의 하나님

사65:16에는 "진리의 하나님"이란 말이 나온다. 여기서 "진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아멘"이다. 고로 "아멘의 하나님"은 오직 진실 만을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에 대해서는 반드시 실행하시는 분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계3:14에서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아멘"이라고 표현(表現)하기도 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멘"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使用)하셨다.

즉 개역 성경에서 "진실로 진실로"로 번역(飜譯)된 헬라어는 "아멘 아멘"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도 자신이 곧 진리임과 동시에(요14:6) 그분이 하시는 그 말씀도 진리(眞理)임을 뜻하는 것이다. < 그랜드 종합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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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진 2014.04.30 07:14
    전문적이고 조심스러운 검토작업을 거치지 못한 글입니다. 넓게 이해하고 읽어주시고 부족한 점 꼭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