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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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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엡6:12-13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은 영적전쟁이 계속되는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

여리고 성같이 견고한 성을 무너뜨려야 할때도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할때도 있다.

사울같은 강력한 상대에게 쫓길때도 있고, 시므이나 도엑 같은 간교한 인간의 모함과 도전을 받을수도 있고, 아히도벨 같은 까다로운 지략가를 상대해야 할때도 있다.

세상의 영에 휘둘리는 사람들과의 접촉과 대결을 피할수 없다. 마귀는 상황과 사람을 통해서 끊임없이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큰 틀에서의 영적전쟁에(엡6:10-20)잘 참여해야 할뿐 아니라, 작은 전선에서의 영적전투를 잘할수 있는 기술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1.고수들의 전략.

무슨 대결이든 승부에 능한 고수들은 자기의 무리수를 자제하고 상대로 하여금 악수를 두게한다. 그리고 그 둔 악수를 잘 활용한다.

 

승리의 전투가 다윗의 전력을 살펴봐도 그의 수는 별 대단한것이 없고 수를 두는 타이밍도 느리다. 전략이 아닌 젊은 용맹으로 싸운 골리앗과의 전투를 제외하고는 사울,압살롬,그리고 이방나라와의 싸움에서 대체로 그의 적들은 스스로 둔 무리수에 넘어졌다.

 

족구라는 게임을 해보면 느낄수 있다.

 

화려한 공격으로 이기려는 팀은 항상 마지막에 가보면 진다. 잘 이기는 팀은 탄탄한 팀웍으로 수비와 공격을 적당히하되 실수를 잘 안하는 팀이다. 지나치게 화려한 공격을 자제한다. 지는 팀들은 자신의 방어력과 팀웍에 대한 점검없이 화려한 공격수로 멋진 플레이를 한다. 그런데 밥내기에서 밥을 사는 팀은 거의 화려한 공격수를 가진 팀이다.

 

하나님도 전쟁에 능한 고수이시다.

그래서인지 그 원칙을 잘 활용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진리이시기 때문에 상대의 잘못된 점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 방법을 쓰신다.

고전3:19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욥5: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대체로 교만한 자들이 두는 악수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인 경우가 많으며 또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심판의 결정적인 계기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다. 아합왕은 자기 취향에 맞는 선지자 시드기야의 말을 듣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죽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거짓말하는 영의 꾀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왕상22:23)

 

하나님께서 상대의 악수를 이용하신 가장 단수가 높은 수는 십자가 사건이었다.

 

마귀는 자기의 모든 잔인한 성질을 쏟아부은 그 고강한 수로 인해 자신이 완벽하게 승리한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씻을수 없는 치명적인 자충수였음이 드러났다. 얼마나 애통했을까?

 

 

2.그리스도인들의 싸움의 기술.

싸움에서는 상대방의 약점과 악수를 살피는 명확한 상황판단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판단력은 안정감있는 호흡과 보폭기술 즉 수비력이 있을때 가질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전쟁에서,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평안함과 온유함을 주시므로 악수를 잘두지 않는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무리수를 자제하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볼수 있다.

 

그러나 기도를 해야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악수를 두게 되어 있다. 평안함이 없으므로 상황에 휘둘리고 조급하게 서둘러서 일을 망치게 되어 있다.

 

기도하지 않는데 악수를 두지 않도록 하나님이 허용하신다면 결국 그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기도해야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때 그냥 놔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못받는 사람이다. 기도하지 않을때 우환이 생기고 마음에 불안이 생겨서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기도해야 할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그걸 잘 살펴보면 그냥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수 있는 능력, 회개할 수 있는 능력,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는 능력을 잃었기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러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기도 안하다 보면 결국 기도 못하게 된다.

 

이때쯤 인간이 고집하기 시작하는 한가지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한없는 사랑으로 좋은것만 주시는 분으로 왜곡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회개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내입맛에 맞게 바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깊으시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예수의 십자가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때에만 사랑하신다. 예수의 인격과 말씀과 그의 십자가사건에 의지함이 있을때에만 사랑하신다. 그것을 벗어나면 하나님의 방치, 질책, 심판의 대상이 된다.(마26:41,막14:38,눅21:36).

 

예수님 말씀안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다.

아무리 내 고집으로 그분은 한계가 없이 다 덮어주시는 분이라고 우겨봐야 진리가 그렇지 않은데 어떡하나.

나 하나 속인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나?

 

첫번째로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것과

두번째로 그 끈을 놓쳤다면 수가 흐트러짐을 느낄때 빨리 꿇어 회개하는 민감한 무릎이 그리스도인이 갖춰야할 싸움기술이다.

 

 

 

3. 온유함이 이긴다.

인간은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당연히 패배의 길로 걸어가게 되어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 길을 가지 않게 경고해주시는 말씀, 간섭해 주시는 따가운 회초리는 사랑인 것이다.

 

그 말씀과 회초리를 받을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하다.

 

온유함이란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나오는 평안함과 안정감의 능력이다.

싸움을 해본 사람은 안다. 상대방의 평안함과 안정감은 그 어떤 화려한 기술보다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 평안함이 없는 사람은 자꾸 무리한 수로 온유한 사람을 공격한다.(무리수라는 말자체에 이미 두려움이 섞여 있다.) 거짓도 좀 섞고, 허용되지 않는 잔수도 섞어 가면서......,

 

육신적인 태도와 성품의 사람들과 싸워야 할때가 있다. 그들은 함부로 말하고 방법도 함부로 쓴다. 그래서 그들이 강해 보인다. 그리스도인이 무력하게 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싸움을 여러 번 겪어 본 고수들은 안다.

그들이 교만하면 교만할수록, 완악하면 완악할수록 그 정도에 알맞은 비참한 심판이나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을,

다만 하나님의 느린 성품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당장에 드러나지 않고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는 것을 모를 뿐이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느린 성품이 눈과 몸에 배인 사람들은 그 인과관계를 여러 번 겪어 봤기 때문에 분명히 안다.

 

성질낼 줄 몰라서 안 내는거 아니고, 싸울 줄 몰라서 안 싸우는거 아니다.

하나님의 확고한 스타일을 알기에 숨이 넘어가는 분을 참고 또 참는 것이다.

내 육신적 혈기로 싸워 봤자 나만 손해니까.

 

어둠의 영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어둠에 영에 잡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를 가만두지 않으신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꼭 심각한 징계를 받게 된다. 어둠의 영에 휘둘릴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엉망이라는 것은 심각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교회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냥 내어버려 두신다. 그 만큼 무서운 심판은 없으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온유한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있다. 그 온유한 사람을 건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을 쓰는 사람에게 심판을 가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욕심과 혈기에 못이겨 정상적인 방법에서 벗어난 사수를 쓰게되면(하나님을 벗어나면 꼭 이런수를 쓰게 되어있다.) 그때 하나님은 매를 드시고 칼을 드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매나 칼은 아합왕이나 사울왕처럼 자기자신이 쓰는 입이나 손발의 악수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 안에서 영악한 사람(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은 상대가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도록 유도한다.(롬12:19-20)

욕설에 묵묵함으로 대응하고, 핍박에 축복으로 대응하고, 속임수나 잔머리에 대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문제와 약점을 점검한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항상 자신의 딱총으로 묘수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화포의 지원을 기다리는 싸움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싸움은 무릎을 꿇고 하는 싸움이다.

누가 바른자세로 하나님앞에 무릎 꿇고 있는가에서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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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진 2014.11.08 11:29
    영적전쟁,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싸움은 그 사람의 말투나 태도를 보면 그 결과를 이미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온유한 성품이 함께 할수 없는 말투와 태도의 결과는 뻔하니까요. 그 말투나 태도를 제어하려고 이를 악무는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싶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지요. 우리의 성품을 죽이고 하나님께 의탁하기 위해서.
    기도가 많이 필요한때인거 같습니다. 미련하고 연약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