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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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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법학과이다 보니 대학 4년 내내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중간·기말고사를 잘 쳐서 학점관리를 잘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졸업할 때가 되니 취업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통신공사 연구직이 좋다고 해서 여름방학 때 대구로 내려와 취업준비를 했다.

그런데, 시험과목인 '전기통신학'이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매일 새벽 가까운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처음에는 지혜와 이해력을 달라고 기도하다가 전기통신 기초지식이 없어 진도가 안 나가자 '하나님, 어찌하오리이까. 나는 갈 길 모르니 나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제목이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끙끙 앓으며 전기통신학과 계속 씨름하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순간적으로 눈앞에 손바닥이 뒤집어지는 것이 보였다. 환상은 아닌데 '생각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해석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그래, 네 힘으로 하려니까 힘들지?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하면 이렇게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쉽단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기쁨이 몰려옴과 동시에 '하나님이 도와주시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변한게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어느 날, 노란 봉투의 편지 한 통이 내 앞으로 배달되어 왔다. '이게 뭐여?'하고 뜯어보니까 모 정부기관에서 '귀하의 대학 평균학점이 우수하여 우리 기관에 응시할 자격이 있으니 생각이 있으시면 응시하라'는 것이었다. '별 희한한게 다 왔네' 하며 살펴보니, 시험과목이 '전기통신학' 빼고는 통신공사와 거의 중복되었다. 그리고 통신공사는 11월에 시험이 있는데 이 기관은 9월에 시험이 있었다. 밑져야 본전, 시험삼아 한 번 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서를 접수하고 어떻게 시험준비를 할까 고민하다가 과거 10년간 사법시험과 행정·외무고시의 객관식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가기로 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쌓아놓았던 기출문제집을 풀어보고 9월 어느 주일 시험치러 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시험문제가 전부 내가 풀어본 기출문제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다 나온 것이다!!! 세상에... 취업시험은 수능처럼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출제된 것들 중에서 짜집기하는 문제은행식이었는데, 이 기관은 고시 3과 기출문제에서 몽땅 뽑은 것이었다. 풀어본 문제들이라 신나게 답을 적어내려갔다.

문제는 주관식 국민윤리 과목이었다. 시험삼아 응시했기 때문에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치면 되겠지 하고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걸 어쩌나 걱정하며 화장실에 쉬 하러 갔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내 옆에 누가 와서 쉬를 하길래 그 사람 얼굴도 안보고 아무 생각없이 '국민윤리는 무슨 문제가 나올까요?'하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내년에 88올림픽을 유치했으니까 88올림픽이 국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논하라는 문제가 나올 것 같고 서론은 이렇게 이렇게, 본론은 이렇게 이렇게, 결론은 이렇게 이렇게 쓰면 될 겁니다'라는 것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넋놓고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이게 왠일! 문제가 화장실맨이 얘기해준 고대로 나온 것이었다!!!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손바닥을 뒤집으신 하나님이 화장실에까지 천사를 보내주신 것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화장실맨이 가르쳐준 데다가 살을 좀 붙여서 서론·본론·결론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더구나 UBF에서 2년 내내 QT노트를 작성했더니만 펜을 시험지에 대자마자 막힘없이 술술좔좔 써지는 것이었다. QT노트를 열심히 작성한 것이 이렇게 빛을 보는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었다. 그 때 느낀 것이, 수능논술 준비는 3학년 한해만이라도 QT노트를 꾸준히 쓰면 충분하겠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 생각에 우수한 성적으로 정부기관에 합격했다. 혹시나 하는 미련이 남아서 11월 통신공사에도 응시를 했는데 결국 '전기통신학'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보기좋게 나가 떨어졌다. 정말 전지하신 하나님은 문제도 아시고 답도 다 아시는 분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기똥차게 아다리를 맞춰주시는지 신통방통하기 그지없었다.

한가지 간과해선 안될 점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스트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스개소리가 하나 있는데, 어느 신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하나님께 철야기도를 했단다. 그리고나서 시험지를 받아보니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적었는데, 교수님의 채점이 더 걸작이었다. '하나님은 백점, 너는 빵점'...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처럼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 행운도 노력하는 자에게만 따라주는 법이다. 나도 건강이 좋지 않아 집중이 안되는 가운데서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 적성에도 꼭 맞고 정말 좋은 평생직장을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