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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TALK

안녕하세요 대학청년부 4진에 있는 권대원입니다.


제가 ㅍㅍㅅㅅ에 기고한 글을 같이 나누고자 공유합니다. 제가 아래의 글에서 다루고 있는 '제자훈련'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교회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제가 선교단체에 있을 때부터 경험했던 한국교회 전반에 유행한(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제자훈련'에 대한 약점과 좀 더 개선할 점이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원고내용중에 제자훈련의 목적을 삶의 현장으로 초점을 맞추는데 바람직한 모델로 Samil Job Academy 이야기도 집어 넣었습니다. 이 글의 말미에는 기사의 내용과 별도로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우리교회 상황에 대한 논의도 첨가했습니다. 송태근 목사님께서도 지난 주일 설교에 제자훈련은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지금까지 당연시되어온 제자훈련의 목적과 프로그램의 약점은 무엇인지, 우리교회 상황에 맞는 대안은 무엇인지 다같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논의에 대한 다양한 이견과 의견은 적극 환영합니다. 이 글은 '제 생각만이 정답이다'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워낙 한국교회는 성도와 목사들과의 소통과 다양한 이슈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 자체가 차단되어 있고,'위에서 떨어지는 명령'에만 순종하는 것이 교회를 위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성도들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보니~문제점과 약점을 누구나 발견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교회를 위한 덕이다'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논의를 적극 끌어내기 위한 '작은 의견개진'이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을 '교회를 흔드는 것'이라든지 평신도가 '건방지게' 목사님께 순종하지 않고 교회의 방향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고, 논의의 주제에서 벗어나 '불순한 의도'라느니 '건방진 글'이라느니 이런 비난은 삼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논의 자체에 집중해주시고 다양하고 다른 생각들을 합리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ㅍㅍㅅㅅ글 원문 링크

http://ppss.kr/archives/20469

<정교하고 빡빡한 제자훈련이 제자를 만들어낼까?>


교회에서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을 좀 더 성숙한 신자요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핵심적 교회 리더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제자훈련’이라고 한다. 명칭은 다양해서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제자훈련’이 교인들을 성숙하게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서 지금도 많은 교회가 시행하고 있다. 대개 그런 제자훈련은 일반교인들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정교하고 빡빡한’ 훈련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제자훈련’의 효과가 과연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교하고 빡빡한 프로그램을 가진 제자훈련이 교인의 성숙과 훌륭한 제자들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대형교회에서 증명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제자훈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랑의 교회’가 저 모양으로 굴러가는 데 저 안에는 얼마나 많은 훈련된 제자가 있나? 출판사 대표가 자기 맘대로 돈을 펑펑 써댄 ‘예수전도단’은? 목사가 성범죄를 저질러 다수의 여성도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삼일교회’는? 교회이름부터 ‘제자교회’라 표방한 교회는 수십억을 목사가 횡령해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물론 대부분 담임목사 개인의 문제로 간단히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저런 교회에 성숙한 제자가 정말 많았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뭔가 내부적 자정 작용과 조치가 있지 않았을까? 한국교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사고를 친 거의 모든 대형교회가 빡빡하고 정교한 제자훈련 프로그램과 선교와 양육 프로그램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좀 더 정교하고 실증적인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교회에서 운영되던 기존의 ‘제자훈련’에는 이런 약점들이 있는 것 같다.


제자를 단기간에 길러내겠다는 철학의 위험성

일정시간 단위로 짜여져 있는 정교하고 빡빡한 제자훈련 프로그램 자체에 '인간이 일정 시간 안에 이런 프로그램을 주입하고 훈련시키면 그대로 변하거나 성숙될 수 있다'는 아주 순진하기 짝이없고 어쩌면 무섭기까지한 기계적 인간관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영화 ‘본’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 본’을 길러내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그토록 단순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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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편집: 권대원

하나님은 그걸 아시기에 성경을 주의 깊게 보면 한 사람을 인도하실 때 평생을 걸쳐 여러 가지 인생의 여정을 통해 사람을 다듬어 가셨던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결국 교회가 다양하고 정교해 보이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간에 사람을 제자화 시키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어쩌면 하나님보다 더한 능력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 아닐까?


일상의 삶에서 제자로 살아가기, 그 지난한 과정


내 생각에는 차라리 지금보다 교회 프로그램이 훨씬 느슨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교회가 본질적으로 해야만 하는 아주 기본적인 활동(바른 말씀 선포, 건강한 교리와 신학교육, ‘교인 사랑’이 아닌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제와 나눔 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람의 성장과 변화는 인생 전체에 걸친 과정’이라는 철학 하에 ‘교회생활에 대한 충성이 곧 신앙성장’이라는 성도들의 착각을 깨뜨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느슨하고 널널하나 분명한 철학을 갖고 그들이 일주일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과 가정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교인 수가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일까?


교회는 우선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이 총체적으로 ‘제자다운 인격과 삶’으로 변한다는 것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교인 수 늘리는 것이 목적’이거나 ‘교회 행사에 열심히 헌신할 일군들 기르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된 기존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고 제자훈련의 바른 철학과 목적부터 정립해야 할 것이다. 순진하게 생각하듯이 교인 수가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거라면 전 국민의 1/4 가까이가 교회에 다니는 데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일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삶의 질’로 증명하는 존재들이지, ‘머릿수’로 증명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포기한다는 것이 교회에서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변화와 성장이 더딘 ‘일상적인 삶의 변화’보다는 캠퍼스나 외국에 나가서 ‘단기간에 화끈하게’ 한 사람이라도 더 꼬셔(?) 오는 걸 하나님 나라 확장이요 선교라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그렇게 널널하게 성도들을 내버려두면 각종 교회 프로그램 돌릴 사람이 없어지고 단기선교나 전도에 나갈 인원이 없어지니까.


삶으로 증명하기보다 제자훈련 이수로 증명하는 제자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단기 양육식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없애면 교인들한테도 인기가 없을 것이다. 교인들은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죄책감과 부채감을 ‘단기간에 화끈하게’ 헌신하는 걸로 ‘탕감’ 받기를 원하니까. 교인들은 구구절절 설명해주지 않아도 삶 전체가 제자답게 변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고 어려운지 잘 알기에 그것보단 6개월 DTS받거나 일주일 동안만 ‘선교지’에 선교 갔다 오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게다가 ‘무슨 무슨 DTS’ 받았다고 하면 삶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성숙한 제자로 다들 인정해주니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정받기도 어려운 ‘진짜 삶으로 살아내는 것’보다 얼마나 쉽고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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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님은 이제 제자임을 증명함!


※ 이해를 돕기위한 참고이미지일 뿐 특정 DTS를 폄하하기 위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미지 편집: 권대원-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기존 제자훈련의 약점을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사실 기존의 제자훈련의 약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신앙생활의 영역’을 ‘교회생활’로 축소시키며, 복음이 삶의 전 영역에 걸친 변화와 혁명을 가져온다는 통전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내세 지향적 영혼구원의 문제로만 복음을 왜곡시킨 영향이 가장 크다 하겠다.(이 내용에 대해서는 지난 번 글을 참조하시길: 오직 내세만을 위해 사는 기독교인과 윌리엄 윌버포스)


그리고 또 한가지 원인은 ‘제자훈련의 목적’이 삶의 전 영역과 인생의 전 여정에 걸쳐  일관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얼마나 많은 수의 교인들을 늘리는지 ‘급격한 양적 증가에 도움이 되는 일군을 길러내는 것’을 제자훈련의 목적으로 잘 못 생각하고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많다는 점이 큰 원인인 것 같다. 그래서 교회의 양적 팽창에 헌신적인 일군들을 얼마나 단기간에 길러낼 수 있는지가 ‘목적’이 된 제자훈련 코스가 남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과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제자훈련’의 목적부터 다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점검하며 깊이 사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 중 중요한 개념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이 아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한가지는 ‘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 즉, ‘교회에서의 봉사생활’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 권사, 집사, 순장, 간사, 리더 할 것 없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가 곧 그 사람의 신앙적 성숙도와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여러분 주위에 어떤 직분을 맡고 있는 교인이 있다면 일주일에 교회를 얼마나 자주 나가는지 물어보라. 장담하건대 최소3일이상 나가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뭔가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 사회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3일이상 교회를 나간다면 그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가능성은?  물론 소수의 탁월한 절제력과 의지력이 있는 사람은 초인적인 의지와 능력을 발휘하고 밤잠 안 자가며 직장과 교회생활 모두를 탁월하게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더러 만일 그렇게 사는 것만이 올바른 제자로서의 삶이라고 한다면 교인 중 과연 몇 %만이 제자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신화화된 제자의 삶은 결국 ‘삶의 일상성’이 휘발되어 버리고, 교회에 맹목적으로 헌신된 극소수의 사람들의 그릇된 자부심만을 키워주며, 결국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이 아니라 교회 안의 ‘슈퍼 히어로’들만 양성하는 교회문화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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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편집: 권대원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이 아니다. 신앙생활은 삶의 모든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직장생활,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서 ‘기독교인답게’사는 것이다. 이 당연하고 쉬운 진실을 기존의 ‘제자훈련’에 함몰된 사람들은 망각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제자훈련 코스가 ‘교회생활에 헌신된 일군을 길러내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면 새로운 대안적 제자훈련은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초점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존의 제자훈련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까다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신된 교회일군을 길러내는 것보다 더욱 성경을 깊이 있게 알아가며 복음의 통전적인 의미를 회복하고, 여러 가지 첨예한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삶의 현장에서의 기준을 세워나가기 위해 훨씬 더 지성적으로도 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헌신된 교회일군을 길러내려면 상명하복의 순종의 미덕만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반지성적 기독교’가 도움이 되지만(가르치기도 훨씬 쉽고), 각자가 처한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려면 교인 각자가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복음의 통전성과 가치관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만 하는 ‘지성적이고 깊이 있는 기독교’와 그런 기준에 부합하여 삶에서 실천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실천적이고 용기있는 기독교’가 모두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 일단 이런 걸 가르칠만한 목회자들의 수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목회자들 스스로 이런 교인들을 양성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헌신되고 충성된 교인들을 길러내야 교회 운영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도움이 될뿐더러, 사사건건 따지지 않고 딴지 걸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반지성적 기독교인들을 길러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쉬우니까. 게다가 교인들도 이런 지성적으로도 까다롭고 실천적으로도 어려운 제자훈련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성적으로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도 어렵고, 실천적으로 행하기도 매우 어려우니까. 이런 제자훈련을 받으면 룸살롱 접대도 받지 말아야 하고 관행적으로 주고받는 under table money도 받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비즈니스에 방해가 될 원칙을 배우고 행하느니 6개월 코스의 제자훈련을 받고 말지…


제자 된 삶은 단기간이 아니라 인생에 걸친 여정이다.

‘제자훈련’이라는 말 자체에 왠지 ‘단기간에 훈련 받는 코스’를 의미하는 뉘앙스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부터 모순이 발생하는 것 같다. 제자로서의 삶은 단기간에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기간의 훈련이 유효할 수 없는 이유는 신앙인들 각자가 처한 상황도 다르고, 회심 이후의 신앙기간도 다를 뿐더러, 설사 같은 수준의 신앙인들을 모아 놓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배우는 속도가 각자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대안적 제자훈련은 신앙연차가 동일한 사람들을 그룹별로 모아놓고 (실존하지도 않는 가상의 피교육대상 표준 모델을 상정하여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표준 교육 모델’의 적용을 받아서는 안된다. 현재 전세계 교육현장에서 그 부작용을 인정받고 있는 표준 교육 모델이라는 것도 사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국민을 산업화에 동원하기 쉬운 유순한 노동자로 만들려는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비되는 대안적 제자훈련은 전인적인 교육이어야 하고, 각 사람의 수준에 맞는 교육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장기간 곁에서 함께하고 교제하며 따를 수 있는 신앙모델을 본받는 도제식 교육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제도화되고 프로그램화된 커리큘럼은 최소화 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또한 신앙 연차 1년, 2년, 또는 간사나 리더가 되면 교육받아야 하는 이수과정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이 골라서 들을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강의와 훈련을 본인의 수준에 맞게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은 교회 자체적으로 모두 소화할 필요도 없다. 기독교 세계관이나 신앙이슈들을 가지고 외부인들을 적극적으로 균형있게 교육하고 있는 다양한 기독교 아카데미 기관들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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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육기관 ‘청어람 아카데미’와 ‘높은뜻광성교회’의 콜라보레이션 강좌
http://ichungeoram.com/4764


그리고 전인적 교육, 수준에 맞는 교육, 도제식 교육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신앙선배의 삶을 곁에서 함께하며 배우는 ‘전인적 교육’과 ‘도제식 교육’이다. 즉,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기독교인 선배들이 교회 내에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중인 제자훈련의 실제적인 삶의 모델을 누구로 상정하고 있는지 교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럼 아마 대부분 그 모델은 제자훈련을 담당하는 목사거나 교회 내에서 존경하는 담임 목사님처럼 살고 싶다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떻게 일반교인(평신도)의 삶의 모델이 ‘목사’가 될 수 있나? 자기 삶의 99%를 ‘기독교인만 상대하는’ 종교 전문직인 목사가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99%는 비신앙인들과 부딪치며 살고 있는 일반교인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순환논리에 빠지게 되는데 현장에서 제대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 내의 제자훈련 또한 ‘교회일군 양성소’로 전락할 뿐 삶의 현장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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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는 ‘Samil Job Academy’를 통해 매년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교인들과 후배들, 교인들을 묶어주며 직업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총론’과 ‘각론’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매년 제공하고 있다. (강사진들이 기존 ‘직업선교 아카데미’를 장식하고 있는 각종 사업체나 선교단체 대표들이 아니라 현역에서 뛰고 있는 평범한 삼일교회 직장인들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Samil Job Academy’ 홈페이지 (http://samiljob.com/) 에 가면 커리큘럼과 핵심 컨셉을 볼 수 있다.


‘교회 중심 주의’의 블랙홀을 벗어나 교인들을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인들의 발길을 자꾸 교회로 향하게 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 머무르며 일상적 삶의 영성을 회복하게 교회가 도와 주워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교인들이 그토록 하찮게 여기는 ‘세상’에서의 결핍과 초라한 모습을 위로해주고 보상해주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직분의 잔치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목사들은 교인들을 자꾸 교회로 불러내서 장악력을 높이며 충성도를 끌어올려서 교인수 증가와 교회 프로그램 운영위원으로 자꾸 활용하려 한다. 교회가 주중에 좀 교인들의 왕래가 적더라도 (기도하러 교회에 오는 것을 제외하면) 삶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부딪치며 대안을 모색하고 연구모임을 만들며 최대한 삶의 현장에 머물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 만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들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매 절기마다 있는 각종 전도, 선교 프로그램, 제자양육 프로그램, 훈련 프로그램~ 더 나아가 주일날 저녁예배까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온전한 주일 성수가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폭력적 주일성수’에 이르기까지 일반 교인들을 교회 안에 묶어두는 각종 잘못된 관행과 프로그램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인들 또한 그런 풍성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교회 프로그램 중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래 친한 교인들끼리 주일마다 만나서 밤늦게까지 같이 예배 드리며 각종 행사를 진행하면 묘한 쾌감과 기쁨, 중독성까지 있다. 그리고 마치 내가 그렇게 교회 일에 열심을 부리는 순간만큼은 나의 허접한 신앙이 뜨겁게 헌신하는 신앙으로 거듭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의 신앙을 불태우고 증명할 곳은 교회가 아니라 당신이 속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점검하는 ‘고독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안식일의 회복’과 고독의 미덕


온종일 예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친한 교우들과 웃고 떠든다고 신앙이 자라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그냥 어쩌면 어릴 적 소꿉놀이와 같은 ‘교회 놀이’에 빠져있는 것이다. 당신은 교회놀이에 빠져있는 ‘교회 안에서만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 삶의 현장에서 인정받는 진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  진짜 신앙이 성장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려면 고독가운데 개인의 영혼과 마음을 단련하는 ‘광야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분주한 프로그램을 빠져 나와 고독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한 유진 피터슨 목사의 말은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목사들과 회중의 지도자들은 보통 주일을, 위원회, 회의, 프로젝트, 선교 그리고 사회 활동 등, 온갖 일로 채운다. 안식일의 고요함과 잠잠함을, 많이 일하기(much-doing) 와 많이 말하기(much-talking)로 대체시켜 버린다. 전형적으로 회중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이 사람들을 온전히 장악하는 때가 일주일에 단 하루, 그 중에서도 몇 시간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영혼에도 좋고 교회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에 그들을 동원하고자 모의한다.

의도는 좋으나 완전히 잘못되었다. 이러한 지도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회중이 주님을 위해서 너무 바쁜 나머지 주님을 위한 시간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게 할 뿐이고, 회중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준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기회를 뺏을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잘 사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선 주일의 소란을 해치우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한 공동의 방법을 취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사30:15).


고독을 일구어라. 침묵을 일구어라.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조언은 지난 20세기 동안 순종적이고 신실한 사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 사람들이 말하는 조언의 핵심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내가 새롭게 할 말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반복해서 말하고, 긴급하게 말하고, 모세의 권위가 뒷받침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안식일을 지키라. 창조에 주의를 기울이라. 창조주를 흠모하라.’

[현실, 하나님의 세계] –(IVP, 유진 피터슨)- 중에서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아닌 ‘목수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삶


더디고 힘들어도 일상의 삶에서 인격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참된 제자의 삶을 보는 것이 참 드물고 그리운 요즘이다. 진짜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그만큼 길고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제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앞으로도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숫자로는 적은 사람들일지라도 교회는 ‘교회일군 기르기가 제자’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참된 제자들을 길러내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 열매의 혜택을 자신의 교회가 직접 누릴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한국 기독교가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많은 기독교인이 짧고 굵게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신 ‘메시아 예수님’의 삶보다 30년 동안 목수로 살아가신 평범한 ‘목수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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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에 대한 총론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교회 이야기를 좀 나누었으면 합니다.


※삼일교회의 제자훈련과 관련된 이야기


삼일교회는 사실 한국교회 부흥사에 있어 상당히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의교회'나 '온누리교회' 같이 정교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기 보다는 자체 선교나 전도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양육과 제자훈련’은 거의 도외시되다시피하고 여름과 겨울에 있는 ‘현장’(선교현장)에서의 빡센 체험과 선교를 통해 수련회나 제자훈련의 효과를 기대한데다. 하루종일 팀활동과 밤늦게까지 예배를 드리는 끈끈한 결속력으로 인해 선후배와 간사,리더들을 보고 배우며 신앙성장을 하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담임목사님께서 오신 후에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적어도 전체적인 대학청년부의 분위기는 위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드리는 모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정죄하는 문화라든지, 특별하게 GBS나 제자양육용 정교한 성경공부 교재가 있는 것도 아니었죠.

지금은 기독교세계관 아카데미를 비롯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생기고 있는데 전 아주 고무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삼일교회가 걸어온 발자취와 맥락에 비추어 몇가지 같이 생각해 볼만한 논의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위의 글도 짧은 글이 아닌데, 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ㅠㅠ;)

1. 첫째 주일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는 것만이 ‘온전한 주일성수’라는 문화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곧 예배다’ 라는 말과 ‘예배가 곧 삶이다’ 라는 말은 무척 유사해 보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삼일교회 많은 분들이 신념처럼 간직하고 있는 ‘예배에 목숨걸라’는 말은 사실 후자의 경우를 의미하죠. ‘예배가 곧 삶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 속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예배드리고 동행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은 ‘삶이 곧 예배다’라는 말에 그 뜻이 더 가깝습니다.

저도 10년간이나 간사를 했고 리더역할까지 합치면 약 13-4년을 삼일교회 대청부에서 헌신해서 그문화를 너무도 잘 알지만, 지금도 여전히 삼일교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일날 전혀 쉬지도 못하고 간사와 리더들은 봉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예배에 온전히 몰입하는 기쁨과 사랑하는 팀원들과의 교제에서 솟아나는 기쁨, 팀원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보람과 뿌듯함이 큰 것 또한 사실이나, 대부분의 간사와 리더들은  다음날인 월요일에 거의 파김치가 되어 정신을 못차릴정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월요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목사님들께서는 월요일날 쉬시더군요. 주일이 안식일의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면 목사님들께서도 주일날 하루만의 안식을 가지시거나, 아니면 평신도 사역자들이 주일을 안식할 수 있게끔 문화를 바꾸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예배가 곧 삶이다’가 아니라 ‘삶이 곧 예배다’라는 논점에서 보면 주일날 가혹한 사역의 부담과 체력적 고갈, 정신적, 영적 고갈은 도리어 헌신된 간사와 리더들을 ‘일상’의 삶에 집중하고 치열하게 살아갈 힘을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왜 간사와 리더들이 1년을 마치고 다시 간사나 리더를 하는 것을 꺼려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개인의 결정들을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부족, 신앙적 열심의 부족'이라고 이야기하시려거든, 목사님들께서도 월요일에 쉬지 마시고 새벽같이 출근하시면서 본을 보이시고  이야기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교회에 온종일 예배드리고 팀원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보람’이 곧 신앙성장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위의 글에서 ‘유진 피터슨’목사님의 날카로운 분석을 인용한 겁니다. 너무나 분주해서 도리어 영성을 키우는 고독의 미덕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조차 빼앗아 버리는 거죠. 믿음이라는 것이 ‘설교만 듣는다고’ 성장한다는 순진한 생각이 아니라면 개인의 영적 성숙과 건강함을 위해 교회행사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홀로 있을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이 필요한데, 제가 보기에 삼일교회는 ‘지나치게’ 분주하고 그걸 또한 부흥하는 교회의 표시로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하더군요.

타교회를 다니다가 삼일교회를 탐방하러 오신 분들의 공통적인 고백이 있습니다. 삼일교회에 청년이 많은 것에 우선 놀라고,둘째 교회가 너무 번잡하고 분주하고 정신없어서 ‘시장바닥’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헌신된 청년들은 삼일교회에 헌신할 수록 부모님 얼굴도 못보고, 가족과의 여유로운 식사한번 못하는 아이러니를 낳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 바쁘고 분주해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과 고독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 가는데 삼일교회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대형교회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을 빌미로 쉼과 재충전, 깊은 고독속에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느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폴 발레리가 이야기 했듯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는 삶의 원리는 교회생활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오래된 교회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한달에 한번 정도라도 ‘가족예배주일’ 또는 ‘봉사예배주일’,’녹색예배주일’ 등  그 어떤 제목이나 이슈를 붙이든지 주일날 ‘대예배’만 드리고 대청예배와 저녁예배를 드리지 않는 주일을 하루정도 배려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주는 대예배만 드리고, 팀원들과 교제한후 각자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가족예배주일), 또는  뜻이 맞는 분들이 있다면 지역사회 봉사단체나 독거노인등을 도우러 갈 수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주시거나(봉사예배주일), 또는 대예배만 드리고 가족들이나 팀원들이 가까운 산으로 들로, 공원으로 놀러가서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며 안식과 쉼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주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녹색예배주일)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대예배만 드리고 오후와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안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배려해 주신다면 자연스럽게 ‘예배가 삶이다’가 아닌 쉼과 안식과 재충전과 성장을 위한 고독이 있는 ‘삶이 곧 예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로 바뀌어 갈 수 있겠죠. 


2. 신앙연차와 수준에 맞는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더욱 확충해서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 아카데미’라든지 ‘예배자학교’, ‘결혼예비학교’ 등등 프로그램들이 생기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 고무적이라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더 이런 프로그램 들이 다양하게 늘어났으면 좋겠구요.

성서연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설한다든지, 양질의 기독교서적을 저술한 저자들을 초청하는 북콘서트를 기획한다든지, 기독교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기독교문화관 아카데미를 개설한다든지, 현실참여적 기독교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가치관을 제안하는 아카데미를 개설한다든지요...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원글에도 언급했듯이 외부교육기관과의 적극적인 콜라보레이션 강좌형태라 할지라도 현재 계신 부목사님들이나 평신도 자원봉사자 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급여를 주는 풀타임 전문 기획자와 행사 프로그래머들을 교회에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실업문제도 해결하고, 이런 부분에 비전과 꿈이 있는 일군도 키울 수 있겠죠. 이런 교육에 관심있는 신학생들이나 평신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성도의 삶과 수준에 밀착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은 한국교회 전체에도 커다란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의 교육프로그램들을 보면 외부 교육기관에 비해 10년이상 뒤떨어진 주제들로 진부하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삼일교회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대형교회로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 들이 있다고 봅니다. 규모적으로 이런 독립적 프로그램을 운영할 여력이 안되는 지역사회의 중소형, 개척교회 교인들도 다같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강의 수강료를 우리교회 교인들은 내더라도 한명의 교인이 수강신청료를 내면 교회에서 그 한명만큼 타교회 교인들이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교회 내의 다양한 교육의 필요도 채울 수 있고 대형교회로서 삼일교회가 지역사회에 있는 작은 교회의 양육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의미도 있겠죠.


3. 더 강조되어야 할 예배의 현장은 '교회'가 아니라 '직장과 가정'!  직업이나 전공별로 교제를 나누고 선후배 사이를 구축하며 자발적 공부모임등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삼일교회는 지금까지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대부분 그 의미가 '전도하거나 선교하는 선교지' 아니면 '예배드리는 교회'의 의미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신앙생활의 중심이 '교회나 선교지'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초점에서 벗어나  진짜 강조해야 하는 예배의 현장은 삶이 곧 예배가 될 수 있는 '직장'과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현장'을 강조하지만 그 맥락은 전혀 다르죠.

그래서 삶의 현장에서의 신앙인을 양육하는데 동기부여가 가능한 우리교회만 있는 자랑스러운 프로그램 중 하나가 ‘Samil Job Academy’ 입니다. 직업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총론’과 ‘각론’을 다 들을 수 있고 자기의 인간관계의 한계안에선 만나기 힘든 직업현장의 신앙선배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년에 한번 있는 이런 모임만으로는 직업현장에서 신앙적 멘토로 삼을만한 ‘선후배’관계의 교제의 끈을 이어갈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실 팀생활을 하다보면 1년내내 ‘팀원’들과만 교제하고 신앙생활을해야하는데 교제의 폭이 넓어지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직업적으로는 거의 상관이 없는 팀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자기가 원하는 진로나 비전, 직장에서의 고충과 애로사항, 문제점과 대안을 토로하고 의논할 선후배사이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가지 대안을 생각해보자면, 한달에 한번씩 주일날 기존 팀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교회 홈페이지 안에서 직능별 자유로운 동아리 모임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한 후 그 주일에는 팀모임이 아니라 직능별 모임에 가서 교제하고 선후배끼리 인사하고 인맥을 만들어나가는 방법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이 동아리를 만들 수 있고 주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그런 분들이 자기 직업의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 공부모임들이 계속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도 삼일교회 교인들 중에 그런식으로 자발적으로 모이고 교제하며 공부하고 있는 모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의 아이디어건 이런식으로 실제 교회 내에서 ‘팀의 영역’을 벗어나 자기가 속한 직업현장의 선후배와 교제하고 교류하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교회가 장을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현재 팀모임에서 거의 많은 팀들이 GBS를 안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거나 대충 교제의 시간으로 퉁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등 이야기할 것들이 많으나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좀 더 바람직하고 건설적이고 개인의 신앙을 단단하게 성숙시키는 ‘제자훈련’에 대한 논의와 건의사항들이 교인들과 목사님들 사이에 오고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이 그런 논의의 시작이 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굉장히 긴 글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노진호 2014.05.15 20:23
    안녕하세요.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여러가지 의견들 잘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본문글은 다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삼일교회에 저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적혀있어서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다른 의견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지만 지금의 삼일교회 주일의 모습은 저도 목소리 내고 있던 부분입니다.
    분주한 주일 우리 한명한명 성도들의 모습과 비교역자 성도들은 평일(월요일 포함)에 일하거나 공부하고 주말에도 교회에서 일하는 모습.
    이부분은 바로 큰 변화를 줄 수는 없더라고 꼭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
    김중복 2014.05.16 06:19
    대안들이 공감이 많이 가네요.

    그리고 추가하여 부탁을 드리자면,

    1. 기도하고 싶어서 새벽기도를 가면, 준비찬양이다, 특송이다, 해서 기도할 시간은 많이 줄고, 어떤 교역자는 새벽기도 설교를 너무 길게해서 설교만 듣다가 출근해야하는 경우도 있고해서 (특히 특별새벽기도는 말씀을 너무 길게해서 기도할 시간이 없네요.)
    이제는 우리교회 새벽기도는 안 나가게 되더라구요.

    새벽기도는 찬양과 말씀은 적당히 하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2. 금요철야기도
    이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금요철야 기도는 기도하러 가는데, 찬양이 너무 길어요. 찬양팀과 노래하러 음악회에 가고자 금요철야를 가야하나요? 피곤한데 시간은 길고 .... 차라리 시간을 줄이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기도회가 될 것 같습니다.
    기도도 제대로 못하게되는 금요철야기도회.
    차라리 명칭을 금요철야찬양집회 라고 명명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금요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도하고 싶어서 어렵게 가게되는 금요철야의 시간인데...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
  • ?
    현영광 2014.05.16 10:19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삼일교회에서 오랜 시간 다양한 사역을 해 보셨던 터라 날카롭게 지적하셨네요.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한 함의점들도 새롭고 좋은 것 같습니다.(사실 이런 고민은 현장에서 실제로 힘들 어 본 사람만이 깊게 고민하니깐요. 다른 어떤이가 고민하겠어요^^)

    개인적으로 부족한 자가 간사로 쓰임 받은 게 기적이지만, 하지만 다시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하라면 그런식으로는 안할꺼구요^^ 건강상하고 교회 외 인맥 다 끊기고 회사에서 졸고 가족에겐 고르반.. 게다가 리더들에게까지 강요하고 못하면 정죄하고...(대표로, 진호야 미안해^^)
    물론 자발적으로 했지만, 더 잘 하지 못함에 내 능력 없음에 자책하고 왜 지치는 지도 모르게 지치는데 케어는 못받고 해결은 혼자 해야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건 송목사님이 오신것, 간사를 그만 둔 것, 그리고 기독교세계관강의를 들은 것.

    송목사님께서 오신 이후 시작된 긍정적인 작은 변화들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좀 더 다양한 변화들이 교회 전반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해왔으니까' 해야 하는 부분들이 누군가에겐 짐이 되는 경우도 있고, 전반적으로 불편이 시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 교회가 이런 관료적으로 굳은 조직이 되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적인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교회~ 잖아요!

    덧1. 근데 이런 고민은 교역자님들은 안하시는지....
    덧2. 윗 댓글에 금철에 관한 부분...격하게 공감합니다. (주변 다섯사람과 하이파이브...1년째 하는데 그만했으면.. ㅋㅋ)
    덧3. 권대원 형제님께서 쓴 글에도 있지만, 기세관 강의 등 좋은 강의들을 많은 교인들이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건방진 생각일 수 있지만, 대청 예배를 꼭 해야 하나요? 어짜피 대학청년부들이 1~5부 예배를 드리쟎아요~
    그 시간에 좋은 강의들(기세관 강의들, 우리만 듣기엔 아까웠습니다), 혹은 좋은 모임들 하면 좋을 듯 합니다.
    덧4. 이런 고민과 생각들, 그리고 대안제시는 간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해봤을 텐데..
    교회 여러 부분들에 대해 주제별로 간사 한 3년이상(제 주관입니다)한 분들 모아놓고 토론 시켜놓으면 좋은 의견들,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올듯. 송목사님과 간사소그룹간의 좌담회? 이런거 어떤가요?
  • ?
    류신찬 2014.05.16 17:16
    우리는 어쩌면 오랜시간 이어져온것들을 아무 고민없이 그저 관성에 따라
    베터리 갈아치우듯 사람만 바꿔가며 반복하고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신도사역자들이 견고하게 서가는것이 사역의 목적이 되지 못하고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수단화되고 대상화되는 지점은 없었는지 깊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위와같은 의견들이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새로운 교역자 분들의 생각과 다른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합력하여 선을이루시는 주님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 ?
    백형진 2014.05.16 18:27
    기존 것들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림들이나 멘트들은 비꼬고 폄하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내용인거 같은데, 이해를 돕기위한 것일뿐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네요.
    아니라고 하시니 받아들이는 분들의 느낌에 맡길 수 밖에요.


    제자훈련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내용이 아니듯이, 위의 여러가지 제시한 내용들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단기간에 될 일은 아닌듯 싶습니다.
    몇몇 분들이 좋다고 제시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닌듯 싶네요.
    아시다시피 교회는 좋다고 생각하는 여러 생각들을 가진 만여명 가까운 분들이 있는 곳이니,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당회나 목회자들과 상담을 해보시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
    정승신 2014.05.17 07:11
    제자프로그램에 대한 건전한 제안을 하는건 좋아 보입니다..그런데 앞에 붙히신 살들이 좀 이상하다...싶은 부분들이 있네요...폭력적 주일성수라던가...목사들이 교회로 성도들을 불러모은다 라거나 도제식 교육이라던가...제자 교육을 받는 성도들이 롤모델로 삼는 분들이 목사님들이나..뭐 강사님들이나거나 한다고 하더라~라던가...메시아예수보다 목수예수의 삶에 주목해야한다던가...대충 보면 맞는 소리처럼 흘러갈수있는 글로 보이나, 그냥 성경말씀을 기준으로보면 좀 이상한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직분도 없고.. 평범하게 예배드리는 성도라..잘 몰라서 그럴수도 있지만요. 목수가 아닌 메시아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제죄를 대속하여 피흘리신 예수님이 중요하하고, 그때 주께서 하신 말씀이 중요하고, 말씀대로 살고, 예수님 닮은 성품을 갖고, 주뜻대로 살고, 주께 맡기고..이런 내용이 성경말씀이고 그런 것 같은데..그리고 목사님들은 성경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주시는분들이고.본인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해야하는게 아닌가...이게 무슨 기술교육도 아니고 직장선배한테 뭐 배우는것도 아닌데 교회선배한테 도제식교육을 배우고..성경읽고 기도하고 하나님뜻 알기도 벅찬데 이것도 제대로 못하는데 교회 몇년 더 다닌 나같은 사람한테 배우나 싶고..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고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셨으니 직장일 마치거나 점심시간 인근 교회라던가..암턴 기도하고 싶으면 자주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좋은게 당연한것 같고..그게 목사님들이 불러서 간다는 생각을 하는게 저에겐 이상하게 보이고...하나님이 하라하신 거고 그게 신앙생활인것 같고 교회 예배당 가면 좋으니까 또 가고....제게는 암턴 좀 이상하고 헷갈릴만한 글로 보입니다.

    결론부 1을 보고 나면 음...그런것도 있구나...싶은데 결론부 2를 보면 (앞서서 교회과잉프로그램이 문제다 이런애기도 있던데) 또 월급받는 전문기획자 애기도 나오고 해서...좀 갸웃하게되고, 앞에선 교회놀이 뭐 이런 표현(비하표현으로 보이는데...저는 성도간 교제와 기도 동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도 있던데 맨끝 결론부 3에는 직장 전공별로 나누고 인맥을 만들고 모임을 갖는다는 것도....앞이나 뒤나 본질은 크게 뭐가 다른가 싶고..저의 보잘것 없는 직장이력과 전공이 하나님께 뭐 그리 중요하겠나, 인맥도 하나님이 필요하면 알아서 사람보내주시는 거고..직장이력도 이것 말고 다른것 해야하면 바꾸실수있는 분이고...저의 깨알같은 세상지식이 뭐 그리 대수이며, 그런 목적지향적 교회인맥들을 일부러 만들필요가 있는건지요? 의문이 많이 생기는 글이네요
  • ?
    권대원 2014.05.19 10:48
    뭔가 제글을 잘못 이해하고 오해하시는 것 같아 부연설명 겸 댓글을 답니다. 성도간의 교제와 기도의 나눔이 교회놀이는 아니죠. 당연히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신앙생활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교회에서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교회놀이'라는 말이구요. 교회놀이라는 말이 불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삼일교회 교인 뿐 아니라 소위 경건하고 믿음 좋은 한국 개신교의 신실한 교인들의 리얼한 실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 주변에 믿지 않는 비신앙 친구 한명 없는 캠퍼스 선교단체 대학생들 부터~직장에서 업무적으로만 소통하고 친한 비신앙인 직장동료 한명없는 장로님에 이르기까지~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많구요. 성도간의 교제와 기도의 나눔이 풍성하다는 의미가 일주일과 하루 삶의 대부분을 교회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겠죠.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은 커녕 뿌려져야할 음식은 외면하고 소금덩어리안에 뭉쳐서 서로만 좋아하고 있거나, 어둠을 밝혀야할 빛들이 세상의 어두움은 외면한채 자기들끼리 뭉쳐서 활활불타오르며 서로 너무 밝아서 좋다고 만족하는 모습을 '교회놀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겁니다.

    그리고 가장 오해하신 부분은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살아가는 모습을 훈련하고 그 삶을 나누기 위해 직능별, 같은 직업군별 교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세속적' 인맥관리로 해석하셨는데~삼일 잡아카데미를 한번이라도 참여해 보셨다면 그런 오해를 하지 않으셨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삼일 잡 아카데미는 기존의 타교회 직장선교모임과는 차별화되는 점이 있습니다. 소위 잘나가는 선교단체나 대기업, 기업체 대표, 임직원들이 강사가 아니라 실무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강사요 주축인 모임이라는 겁니다. 자기 삶의 현장에서의 기독교인다운 가치관과 직업윤리를 배우고 고민을 토로하기 위해 동일 직종안에서 먼저 근무했던 선배들과의 만남과 멘토링하는 관계를 세속적 성공과 끌어주고 끌어당겨주는 세속적 '인맥관리'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기존의 직장선교 개념의 모임들이 대부분 그런 형태와 의미로 변질되고 있으니까요...)

    저도 2년 째 삼일잡아카데미 스탭과 강사역할을 했지만 그런 의미의 모임이었다면 저부터도 모임의 취지에 동의할 수 없어서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 다운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목적의) 목적지향적인 교회 인맥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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