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영화를 보다-<철가방 김 우수씨>

by 김영진 posted Nov 20,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난한 중국집 배달원으로 다른 이들을 도와서 나눔을 이땅에 보여준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최수종씨와 통화를 하던 중. 자신이 중국집 배달원 우수씨 이야기를 촬영하고 있는데 기독교 색채가 가득하다 무척 행복하다. 출연료 없이 재능기부로 하고 있다고 들떠서 말을 했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시사회를 한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영화를 보러가면서 문득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런 선행의 이야기는 그 내용이 따스함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뻔하게 전개되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런 소재를 드라마로 하겠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금방 손이 나가지 않을 그런 소재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특이한 에피소드는 없었습니다.(이런때 딱치고 들어오는 말씀이 있지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마태복음164, 본질을 못보는 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 올시다. 요새 남녀의 사귐에서 이벤트가 높게 쳐지는 것도 바로 이렇게 표적을 구하는 데서 나옵니다.)

1.정직하게 , 정공법으로

극적 구성을 강하게 할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김우수씨의 이야기는 감동이 있습니다. 정공법으로 차근차근 접근한 것이 쌓여서 그리 된 것입니다. 흥행 생각해서 이런 저런 장치를 쓰지 않고 그저 진실로 접근하기입니다. 진정성이 전달된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영상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은 구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 하나님으로 다가 가는 이야기는 이런 저런 기술이 아니라, 그저 우직한 접근이 가능하게 합니다. 문화선교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김관영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지요. ‘복음은 급진적이다여기서 급진적이라함은 사상의 과격성이 아니라, 그저 접근할 때 곧이 곧대로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로 쓴 것입니다.

영화<철가방 우수씨>도 정공법으로 접근한 것이 감동을 불러왔고, 이 역할을 최수종씨가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배우는 화면에서만 연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쉬지않고 연기합니다. 그것들이 쌓여져서 그의 연기를 완성합니다. 관객에게 전해집니다.)

2. 감사는 폭탄이다.

어떤 사연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우수씨가 수형생활을 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 생활중에 그는 우연히 가난한 남매를 돕게 되고, 그들로부터 받은 감사하다는 말은 우수씨를 웃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우수씨에게 자존감을 줍니다. 복지에서 다른 사람(이를 클라이언트라고 표현하는게 맞나요?)을 일으켜 세울때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이 존재감의 확보라는 것이 선연하게 왔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은 우수씨 가슴에서 폭발하여 더 큰 감사의 소재로 작용합니다. 등이 굽은 여자아이에게 등에 매는 뽀로로 가방을 선물해 줘서, 그녀가 곱추라는 놀림에서 해방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언 1124)

영화가 끝난후 우수씨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저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답합니다.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

3.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 보여진 감동

우수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후 장례식장에서 보여진 문상객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 최대의 감동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수씨는 씨앗이 되어 땅에 떨어졌고, 그땅이 어떤 것이든 아에 그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48)

이제 그는 갔습니다. 이제 그의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

그 이야기가 좋은 땅에 뿌려져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나눔이 퍼져나가기를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