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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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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 예배 본문에서 한 주 내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이 걸려 있었네요.

요담은 어린 나이에 숨는다고 스스로 숨어졌을까?

아비멜렉이 이복 형제 70명을 다 죽이면서 한 명은 도망 간 줄 몰랐을까?

아님 넘 어리고 하잖은 존재로 여겨 그냥 내 버려둔건가?

또 그리심 산 꼭대기의 외침은 왼 담대함일까?

울 동네 전국 노동조합 총 연맹 충남지부와 한국기자협회란 간판으로 사무실이 열렸네요. 여러 개의 화환이 도착해 있고, 그 앞 도로에 일방향으로 주먹을 불끈 쥔 사람과 단결투쟁이란 섬특한 포스터가 새겨진 차들도 즐비해 있었지요.

경찰관들도 차와 함께 더러 더러..

한 나절 즈음 그 차들이 시내를 돌고 올라 오는지 우회전 깜박이를 한 대도 안켜고 차창 열고 여상히 담배 피우면서 운전 하더군요.

전 스쿠터로 그 주행차들 옆을 지나 가면서 이렇게 외쳤죠.

단결 투쟁?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이냐?

깜박이 하나도 켤줄 모르고 담뱃재 도로에 여상히 털면서 ..

그 사무실에 들어가 제대로 항의 해 보려고 갔더니 아무도 없고, 경찰서로 전화 했더니 자기네들도 기본질서는 제대로 지키고 하라고 권유는 한다면서 워낙 인감한 사항이니 청화대 계시판을 두드리라나?

사사시대에도, 오늘 날에도 하나님께선 시퍼렇케 살아계시죠? 

  • ?
    김권영 2019.11.25 03:17

     안녕하세요. 

    3청의 김권영 이라고 합니다. 

    살면서 주어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살면서 일상의 궁금증이 많이 있는 편인데요.  

    기본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나누어질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갖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도라는 전제의 값어치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서로에 대한 관찰과 권면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이 오래 계속 되고 있네요. 간사와 리더는 바쁘고, GBS하기에도 빠듯한 주일의 시간 안배가 우리의 현실입니다.  

    저도 특별히 형제님의 글이 더 예사롭지 않고 지나치기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의 궁금증들이 교회 전체로는 한 주에도 수천 건일텐데요. 거의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간다고 봅니다. 

    이 사람이던 저 사람이던 감정을 토로하기에도 바쁜데 진리와 진리를 따르는 삶과 영적인 것들을 분별하기 위한 이야기는 환영받지도 못하지요. 게시판에서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왜 교회에서 진리를 나눌 수 없게 된 것일까요. 감정적인 공감대가 없다면, 진리를 나누는 것이 단호히 배격되는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 감정의 배려가 영적인 것에 우선하고 성도의 교통이라는 서로의 전제가 없으며 우선순위가 영과 존재의 진정성에 있지 않고 표면적인 관계적 절차(protocol;이거 한글로 쓰니 금칙어네요)와 이유도 없는 개인적 컨디션에 무게가 주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지금의 팀은 어차피 사라질 팀입니다. 감정적 protocol(proto가 한글로 왜 금칙어일까요;;)이 형성되고 공감대를 가질만한 시간이 차게 되면 개편이 일어나죠. 

    서로 여러가지 할 말을 할 수 있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동역의 비젼을 보기 시작할 때에 공동체는 리셋 됩니다. 

    리셋된 팀에서는 모든 조건이 전과 같지요. 또 되풀이 됩니다. 그러기를 십년이 넘었네요.  

    각설하고, 형제님의 질문중 제가 요즘 관심을 가진 분야인 정치에 대해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단결 투쟁하고 누군가 모이는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일반적인 생각을 나누고 싶은 것이죠. 

    물론, 단결투쟁하고 모인분들의 이해관계와 의사소통체계를 이 글에 쓴다면 누군가 시험에 들 것이기에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아래에 설명드리겠지만.  

    그저 신앙인으로 현 시점에 어떠한 태도를 갖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할까에 대한 고민을은 나눌 수 있겠고, 

    이를 통해서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라는 예수님의 말씀 처럼, 오늘날의 우리나라는 천부인권설에서부터 내려오는 사회계약시스템 이고 , 헌법제 1조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오며, 우리 자신이 가이사 아구스도 입니다. 1차대전 직후의 독일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점은 당시 독일은 90퍼센트 이상이 우리와 같은 개신교인(프로테스탄트)였고, 우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권력은 국가의 조직적 수행 절차상 특정인에게 유보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이 다수결로 의결합니다. 

    대통령선거에 의해 이 유보된 권력은 다시 헌법의 시스템에 의하여 탄핵되거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모두가 알다시피 그렇습니다.  

    따라서, 교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어느 것을 지지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정권에 대한 입장이라면 특별히 이해관계이던 가치관이던 어떤 조건들을 논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는 이 자유를 표현하는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다시피 선과 악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일단, 종교의 자유가 보장 됩니다. 

    물론 정교 분리가 원칙입니다. 정치적 또는 종교적(우리는 신앙적) 신념에 의해 모든 활동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종교적 활동에 의해 정치단체를 구성하고 국회에 진출해서 원내구성단체를 하고 대통령을 하면서 시장을 하면서 종교적신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로운 국가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겠죠.  

    하지만, 그 활동이 지나쳐서 개헌에 의해 국교를 만들려고 하게 된다면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게 되므로 저지 되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상당히 성경적인 시스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시행착오를 이야기하자면, 독일은 1차대전 이후, 교회가 정치에 침묵하게 되면서 93퍼센트가 나치를 지지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즉, 교회의 침묵과 시민의 개별적인 삶의 무게가 게르만민족의 이상향인 레벤스라움을 지향하게 되었고 교회는 이에 대하여 침묵하였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유대인의 학살로 귀결 되었습니다. 

    미국이 이겼기 때문에, 현재의 독일은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국가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종교적이거나 비 종교적 신념등 각자의 신념에 따라 정치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회개가 필요했던 독일은 교인들에 의해 기독교민주당, 줄여서 기민당이 오랫동안 단독으로 또는 연정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또한, 헌법이 구성하고자 하는 목표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체제를 위협하는 목적성을 가진 정당을 구성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종교의 자유를 위해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적 활동은 철저히 보장되지만, 그 활동에 의하여 국교가 구성되고 그 국교가 국가 구성원에 대해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종교적이 아니라 정치적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정당에는 해산 명령이 내려 집니다.  

    국민으로서는, 우리의 현실에 있어 우리로부터 유보된 권력에 대하여 두가지 정도의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가 구성원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여당은 상식선에서 볼 때에, 호남향우회의 지분이 약 5-7할, 그리고 진보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세력이 나머지로 구성되어있는 복수적 이해관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관점에서 볼때, 구제와 경제적 평등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경우 위에 말씀하신 개인의 이익을 주장하고자 연합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섬뜩한 구호들이 나오는 이유는 이해관계에 대한 첨예한 관심을 이야기 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디 그들의 자유에 대하여 인정하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국가 구성원의 입장에서 볼때, 위 2가지의 여당 주류 구성세력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호남향우회의 세력은 크나큰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당의 바깥에 있는 그들의 반대세력 또는 야권의 주 세력에 대하여 절대로 중립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인품이 도야된 사람들의 경우 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도 상대세력에 대하여 무관심한 정도를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우리 역시 아픔을 공유해야 합니다. 아프다고 하지 않을 때 까지 위로해야 합니다.  

    긴 이야기는 어렵지만, 이들은 주로 개인 스스로가 포함된 주변의 경제적인 이익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활동 합니다. 

    이해관계 외의 정치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상대를 생각하면 아프기 때문입니다. 무관심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아쉬운점은 이제 그 아픔을 딛고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합니다.  

    나머지 하나의 여당구성세력은 아시다시피 진보세력이지만 홍콩의 민주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즉 정치적으로 프로그레시브이지만 리버럴리즘은 아닙니다. 

    사법판결에 의한 기록들로 볼 때 직전 법무장관 등 전향하지 않은 공산주의자들도 섞여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산주의는 세속주의가 아니며 체제를 부정하는 위헌성을 가졌고, 유사종교입니다. 

    크리스챤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비록 구제를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칼 맑스의 악마숭배행위의 결과이며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포이어바흐의 사적유물론이며, 합리성을 결여한채 노동을 신성시하고 신의 자리에 놓았고 이는 세속주의가 아니라 유사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양자 중 어느 쪽이 체제를 리딩하는 가를 분명히 판단할 필요가 있기는 합니다.  

    이 경우 국민으로, 또 신앙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즉, 헌법이 목적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세속주의인지, 또는 세속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적 이성주의인 말그대로 프로그레시브(이성이 종교)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종교적 신념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유주의적 이성주의에 따라 이성의 특수한 한계(이'율배반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특정한 주장이 이성적으로 옳다고 믿는 신념 때문에 통치 세력의 신념과 입법이 불합리하더라도 모두가 따르도록 법을 구성하여 실질적으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으로 볼 때 이것은 정당의 강령은 위헌성이 없으나, 실질적으로는 위헌성을 가진 활동이 구성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말합니다.  

    백번 강조하더라도 지나침이 없는 것은 크리스챤의 입장에서 정부가 세속주의인지 유사종교인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이해관계이겠으나, 우리에게 있어서는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헌법상 유보된 권력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가치관을 부정하는지, 또는 부정하는 체제로 이행하는 지에 대한 것을 감시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국민과 신앙인의 두가지관점은 결국 헌법에 의해 명시된 종교의 자유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 하겠죠.  

    만약 문제가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위헌정당해산사례 처럼 처리될 수는 없으니 실질적 운영이 위헌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것이 판단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서 우리는 각자의 판단력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은 사법 체계와 국가 시스템 전체를 포괄하여 볼때 자정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헌법가치에 대한 게릴라전이라고 할까요.  

    독일은 이부분에 대해 선배국가입니다. 

    독일은 통일 이후에 장관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수많은 간첩 또는 슈타지 비밀요원이 적발되어 위헌정당의 해산이 가능해졌습니다.  

    현대에 지지를 얻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관점으로는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라는 관점은 개인적으로 성경의 관점과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부가 세속주의로 운영되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아구스도에게"라는 말처럼 권력의 유보를 국민으로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세속주의"가 아닌 특정한 이성적 판단이 우리의 가치관 위에 강제적으로덮어 씌워질 가능성이 있을때, 이는 위헌적이며, 치명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예를 들면 캐나다의 Bill C-16(빌씨씩스틴) 은 크리스챤이 성경적으로 가진 창조섭리에 대한 성(Gender)의 이해와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도록 하는 법률이고 시행중입니다. 자유주의적 이성주의의 산물이죠.  

    타인이 스스로 주장하는 성이 창조섭리에 의한 남녀라는 생물학적 성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불리워지기 원하는 인칭대명사의 성으로 불러주지 않을 경우 형사적으로 처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성이 우상인 이성주의의 산물이며, 세속주의가 아닙니다. 

    인류사에 명증적으로 증명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밝히는 이성의 이'율배반성(모순)이라는 특성 조차 무시합니다. 

    즉, 인간이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결여한 법으로 자유를 억압합니다.  

    크리스챤들의 무관심은 이런 중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만약, 

    국가행정권력이 유보된 집단이 자유주의적 이성주의에 따라 이성을 절대적 진리로 두고 그 이성의 결론은 신이 없다는 것이며, 이러한 이성의 결론을 따르도록 크리스챤의 가치관에 대한 자유를 억압한다면 이는 기독교를 억압하는 반세속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우리는 결단코 가만있어서는 안됩니다.  

    현국가권력유보집단이 세속주의가 아니라는 것이 확증적이라면 기독교는 억압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당시의 유대민족자치와는 다른 마카베오항쟁당시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현재 성급히 이러한 입장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세속주의임이 확증적이라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현대의 가이사이며 헌법의 권력주체인 우리 자신은 자유로운 성경적인 지침에 따라 헌법의 권리에 의한 절차대로 지지하던 탄핵을 주장하던 관심을 갖지 않던 국민으로,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간의 교통이라는 전제로 볼때 위선을 갖지 않고 말씀드리자면, 제 주제에 양선을 표방할 인품도 아니고요.(기도 부탁드려요) 

    제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정권이 절대로, 세속주의가 절대로 아니라 유사종교를 신봉한다는 정보와 판단, 또는 반대 입장에서의 예단과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구제에 대한 비젼을 간간히 주지만 허울에 불과하고 그를 지지할 경우 교회를 통째로 내주어야 하는 시스템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어느 때고 반기독교 세력에 대한 항쟁의 준비와 비기독교인에 대해 품으려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내 놓을 각오 역시 자연스럽습니다.(복 받았죠) 하지만, 이러한 제 관점은 "현재 시점에서(제 생각에 적어도 앞으로 한 두달은)" 성도들간에 절대로 일반화 될 수 없고 일반화 되어서도 안됩니다.  

    분명한 것은, 

    즉 현재 이 시각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에 입각한 사실은, 

    권력주체인 우리 자신들에게 충분치 않은 정보의 양이 평균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현시점의 헌법상 권력유보체에 대하여 탄핵이던 지지이던 어떠한 판단에 의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신앙적이거나 반신앙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거라서말이지요. 

    교회 내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성도간에 유익인가, 즉 교회내에서의 선한 행동인가 판단이 남습니다.  

    단언컨데, 현재의 시점에서는 누구나 구분이 어렵고 각자의 정보량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대화들이 교회에서 나누어지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어느 때 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이 쓰여 지는 시점에서는 어떤 정치적 판단과 결론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역시 문제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시기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세력인데 침묵해서도 안되고, 구원에 대한 자랑을 야망으로 삼아 하나님을 믿지 않는 타인을 시험에 들게 해서도 안되는 정보 불균형의 시점이며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즉, 현재의 정보 수준과 확증적 사실들에 대한 이해에 따라 어떠한 것이 선인지 아닌지 새 시대의 새 의무가 주어지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 각자 각자에게 다른 시점 입니다. 

    각자의 달란트와 중심에 따라 다르게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국민으로 각자가 입장을 갖되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특정한 결론이 공론화가 되어서는 안되는 시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특별히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 생각해야 할 점은 

    성도간에 서로 부족한 정보들로 인해 교회의 화목이 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영혼 구원에 대하여 큰 문제입니다.  

    누구라도 작은 이 하나를 정치적인 것으로 인해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도 

    설교시간에 크리스챤은 편이 있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나라만 있는 '신파' 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특별히 '피아식별이 어려운 시기'라는 말씀으로 이를 특별히 이를 당부하셨습니다.  

    단결 투쟁 하시는 분들로 인해 받으시는 스트레스를 이해하지만, 게시판에 올리기 보다는 교역자께 이야기 하시는 것이 교회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 역시 제 의견을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도록 신문 사설보다는 복잡하게 썼습니다. 귀찮아서 누가 이걸 볼까 싶네요. 저도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제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면 무엇으로든 태세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성도님 께서도 저처럼 영적인 일이라면 영적으로 분별 되기를 바라는 과정에 있을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일희일비 하지 않고 교회와 나라를 위해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도록 기도하고 성도들과 함께 은혜를 구하여 하나님 나라를 침노해 나가는 것이 영적으로 선한 태도이겠지요.  

    저는 하나님께서는 낮은 곳으로 임하셨으며, 저 때문에 죽으셨고, 

     

     제가 그리스도를 죽게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가지신 저를 향한 계획을 믿습니다. 

     

     그것은 복음에 빚진 자로 살아가는 것임을 믿습니다. 

     

     부족해서 타인에 대한 오지랖으로 발현되고는 하지요. 

     

     이토록 소망이 없음에도 저를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세의 유럽국가들처럼 신정일치를 통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돌아오지 않은 영들을 폭압하도록 우리를 종용하실리도 없고, 

    북한 정권하에 신음하는 지하교회의 교우들처럼 우리가 비참한 신앙생활을 하거나 문준경전도사님을 죽인 세력을 이 땅에  두어 지배하기를 원하시지도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 안에 누가 어떠한 입장을 가진 것에 대해서 관용 하시고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지도 말고 당분간이라도 평안하시기를 바라는 이유 입니다.  

    이 시점에서 경제와 문화, 지정학적인 위치를 볼 때 

    중국과 일본의 선교에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그나마 우리나라입니다. 

    만약 우리의 정치가 불안해진다면 선교는 어려워집니다. 

    이 비젼에 공감하고 계실 것이기에,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거나 

    예레미야의 입술을 통하여 말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고레스에게 감동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정치에 대해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위로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