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직개편 관련 질문이 있습니다.

by 신창조 posted Oct 29,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안녕하세요.

5진 2팀 22기 신창조입니다.

 

조만간 조직개편을 한다는데, 관련해서 이야기 할 곳도 없어서 혼자 고민하다가 게시판에 글을 씁니다.

 

빠른 이해를 위해 간단한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22기(81년생)로 삼일교회는 2002년부터 다녔습니다.

짧지만 찬양팀도 했고, 부족하나마 유년부 교사, 몇년동안 선교 준비팀,  최근에는 치유와공의를위한 TF팀, 현재는 구제부에 속해서 활동중이고 현재 5진 6팀에 소속이 되어있습니다.

 

저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문제가 뭔지 먼저 파악을 하고 그에 걸맞는 솔루션을 도입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이건 저만의 아주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직개편이란 이야기가 나오더니 나온 결론은 나이로 조직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알고 싶었습니다.

과연 문제가 뭐라고 보기에 이런 개편을 하는 걸까?

다행히? 삼일뉴스, 예스삼일 등을 통해 뭘 문제라고 인식한 건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스삼일에 나온 걸 그대로 인용합니다.

 

1. 사람은 변하여도 시스템은 그대로

사람이 변했다고 했지만, 구성원들이 바라는 바가 바뀌었다고 읽혔습니다.

30대 중후반이 많이 유입되었고 그 나이대를 전문적으로 품어줄 교회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2. 30년의 스펙트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니 불편하다는 게 요지인 것 같습니다. 소위 젊은 꼰대를 볼 수 있다는 거죠.

 

결국 교회의 구성원 연령대와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거고 그 구성원들이 바라는 바가 있다고 보기에 개편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1. 연령에 맞는 목양이란 무엇인가?

연령으로 사람을 묶는 건 오히려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이야기가 나온 게 십 년도 넘었습니다. 위에 말한 "꼰대"가 잘못이지 나이는 잘못이 없죠. 그리고 오히려 친구나 한살 차이나는 사람에게도 꼰대질을 당하곤 합니다.

 

그리고 목양이라는 건 결국 한명 한명을 마주해야합니다.

모든 사람의 사정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죠.

 

2. 이어지는 질문인데, 그렇다면 기존의 조직 체계에서 앞서 말한 문제라는 것들이 발생했는데 그러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제가 삼일교회를 다니는 15년간 구성원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구성원의 숫자가 달라졌을 뿐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일교회를 잘 다니고 활동을 하다가 40대가 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는 많이 봤습니다. 나이 들어 대청부에 남기 부담스럽다는 이유였죠. 혹은 떠나지 않더라도 팀에는 안 나가고 혼자 나와서 예배하고 친한 지인들과 차 한잔 정도 하는 거로 일요일을 보내는 분도 있습니다. 과연 교회는 그분들을 위해 뭘 했나요?

 

3. 구분이 최선의 답인가?

이건 결국 가치관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저는 구분은 명백한 최악의 답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서로 보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내 상황이 가장 급하기 때문이죠. 내 삶에 여유가 생겨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상황에 공감할 때입니다. 내가 조금 힘들어도 상대방의 어려움에 공감하면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기죠.

 

대학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교회는 대학부가 생기면서 20대 초반의 청년들과 20대 후반 이상의 청년들이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게 일종의 테스트였다고 보는데, 그 결과는 어떨까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과연 20대 후반 이상의 청년들을 잘 이해할까요?

반대로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20대 초반의 청년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과거 대학부는 교회 내의 여러 혜택을 받았습니다.

선교 등록을 하더라도 대학부라는 이유로 등록비를 할인받고, 기타 우리가 모르는 여러 지원이 있었습니다.

이런 지원을 보면서 누군지는 밝히기 어렵지만, 저와 비슷한 또래의 어떤 사람은 우리도 피땀 흘려 돈 벌어서 선교비 내는데 대학부는 어리다고 그것도 할인해준다는 말을 하더군요. 저 역시 20대 초반에 선교비를 내기 위해 특별히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대학부는 아직 취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에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 등록비를 할인해준다고 하지만, 30대라고 청년실업이 사회문제인 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돈을 잘 벌 것이며, 그들이라고 해서 선교에 동참할 열정이 넘치나요?

현실은 모두 다 힘듭니다. 아니 어쩌면 나이 먹고도 취업이 안 된 사람은 더 죽을 맛이겠죠.

저에게 대학부의 선교비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람도 그런 맥락에 푸념한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당신 팀에 친한 대학생이 있는데 그 사람이 선교비가 부족해서 어려워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니 약간 당황하면서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더군요.

 

우리는 안 보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가까이에 있어야 서로를 이해할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데, 서로 멀어지면 그런 시도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제가 20대 초중반일 때 그렇게 팀의 형 누나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밥도 많이 얻어먹고 선교 등의 교회 일에 돈이 들어갈 때 많은 배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학부가 생긴 최근 몇 년 동안 팀 내에 20대 초반은 사라졌고, 사실상 보이지 않는 그들은 우리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주일학교를 볼 수 있습니다.

삼일교회에 주일학교 아이들이 약 2천 명이 있다고 하면 못 믿을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미취학 영유아부에 약 1천 명의 아이들과 330여 명의 교사가 있고, 초중고 합쳐서 약 1천 명의 아이들과 280여 명의 교사가 있습니다.

저 역시 과거 짧은 기간이나마 유년부에서 활동해서 대충은 아는데, 아이들이 교회 내에 지낼 공간이 없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만 아는 현실입니다.

특히 공과공부를 할 공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합니다.

매주 목청 높여가며 아이들과 소통하며 봉사하시는 그분들의 노고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봉사하고 있다고 보면 큰 오해를 하는 겁니다. 오전 10시 반경에 매주 예배가 있기에 그분들은 평일보다 일요일이 어쩌면 더 피곤한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들의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주일학교 아이들의 숫자는 어쩌면 대청부의 팀모임에 참석하는 숫자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주보에 나온 예배자 및 모임 숫자를 살펴보니 모임에 나오는 숫자는 진 별로 100명 안팎이고 20개의 진이 있으니 대충 2천 명으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교회에 목소리를 낼 수 없죠. 일단 미성년자고 그들은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면 그 열악한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 건축을 매우 위험하게 보는 사람입니다. 건축 때문에 망가진 교회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건축 관련 설명회는 최대한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하다면 할 건 해야죠. 아니면 건축이 아니더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청년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다.

앞서 말한 대로 2천 명 가까운 아이들이 삼일교회 주일학교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는지는 더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대책은 청년들 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예배당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유모차가 있어서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이 못 타면 그저 짜증이 날 뿐이죠.

 

장년부는 어떤가요?

솔직히 저는 교회에서 빨빨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린 덕에 몇몇 교회 어른들과 인사를 합니다만 사실 그뿐입니다. 장로님은 장로님이고 집사님은 집사님이죠. 그래도 저는 치유와 공의를 위한 TF팀을 하면서 몇몇 장년부 분들과 알게 되었고, 대청부에만 소속되어있던 저로선 아직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듣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나마 인사를 하는 분들이라도 있지 대부분은 장년부에 누가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저처럼 뭔가 교회 내 봉사라도 하면 관련 부장집사님이라도 알게 되지만, 그저 팀생활만 하면 장년부에 소속된 분들과 교류를 할 일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 반증이 임직자 선거라고 보는데, 수십 명이 임직자가 되기 위해 나왔지만 적어도 얼굴과 이름이라도 알고 투표를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오죽하면 1번부터 쭉 찍으라는 말을 하겠어요.

 

이처럼 구분됨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은 결국 서로 반목하는 것입니다. 이해보다 오해가 더 쉬워지고 그 결과로 더더욱 나뉘길 원하게 됩니다. 악순환이 벌어지는 거죠.

물론 비슷한 또래끼리만 모이면 조금은 더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편함보다 그로인한 부작용이 훨씬 치명적일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4. 왜 20~29, 30~35, 36~49세인가?

다른 교회나 조직을 보면 20대, 30대, 40대 식으로 나누는 경우는 봐왔지만 이런 나이 구분은 처음 봅니다. 그 기준이 뭔가요? 만약 나눈 이유가 구성원의 숫자라고 한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어떤 필요에 의해 개편을 한다면 그 목적에 맞게 조직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 질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을 텐데 그 의도는 아무리 살펴봐도 말해주지 않아서요.

부디 뭔가 아주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조사와 고민의 결과이길 바랍니다.

 

어제 본 조직개편에 관한 리플렛을 보면 각 조직별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거기 있는 모든 내용은 연령과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고 적용해야 하는 이야기들 이런 겁니다.

가령 청년1부의 "다르지만 하나 된 공동체"라는 목표는 청년3부에 적용해도 됩니다. "서로 다른 소명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비전을 공유하고 삶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생활 공동체"는 20대의 전유물이 아니잖아요?

비슷하게 청년3부에 있는 "선교적 사명 공동체"는 청년1부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비단 40대만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미래와 다음 세대에 소망이 되는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죠.

 

이렇게 보면 나이별로 조직을  나눠서 뭔갈 하고싶긴 한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요?

 

다양함 속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나누어져 있기보단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그저 개개인이 더 편한 공동체가 교회의 지향점이 아님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잘 아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미 사회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서 나이로 뭔갈 나누지 않습니다. 굳이 찾아보니 클럽 정도만 있는 것 같더군요. 클럽은 명백한 이유라도 있습니다. 그런 게 교회가 그래선 안 되지 않을까요?

 

요 몇 주간 엄청 많이 기도하고 고민했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되어가는 걸까? 더 품고 더 사랑하고 더 화합의 장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왜 서로를 나누자고 하는 걸까?

그런데 딱히 이 질문을 할 곳도, 대화를 나눌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방법인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 글을 쓴다고해서 실제로 바뀔게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올린 건 소통을 원하기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 끝에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 이야기를 고려해서 현재 진행되는 조직개편이 서로를 나누는 게 아니라 통합하는 쪽으로 다시 검토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