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0 환대는 정체성이다 (눅4:18-19)

by 김일호목사 posted Feb 20,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환대는 정체성이다 / 4:18-19

2022.2.20.

 

 

 

 

맞이하기

 

 

*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오늘날 환대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는 환대는 쉬운 것이었을까요?

- 각박한 세상에서 환대의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기도하기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환대는 정체성이다 / 4:18-19

2022.2.20.

 

 

들어가며

국어사전의 의미로 환대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환대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타인을 향하여 열려 있는 자세와 마음이 환대의 시작인 것입니다. 분명 오늘날의 사회는 다른 사람을 향한 환대의 마음을 갖는 것이 매우 어려운,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게 만드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곤고한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환대가 되게 하십니다.

 

1. 희년과 하나님의 환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회당에서 말씀을 전파하시는 사역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찾아 읽으신 말씀은 이사야의 글이었습니다(61:1-2). 이 구절은 기름부음을 받는 자, 곧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서 그 메시아께서 이루실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는 메시아가 이루시는 구원의 날을 하나님의 은혜의 해로 설명합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맞아 주시는 것, 곧 하나님의 환대를 가리킵니다. 그 환대를 통해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고, 포로된 자가 자유케 되며, 갇힌 자가 놓임을 받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여호와의 은혜의 해는 율법이 명령하는 희년과 맞닿아 있습니다(25:8-10).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된 후 맞는 희년에는 잃어버린 땅이 되돌려지고, 종으로 매어있던 자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희년은 정초가 아닌 일곱째 달 열흘째 날, 곧 속죄일을 기점으로 시작됩니다. 희생제물의 피가 지성소가 부어져 이스라엘이 정결하게 되는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 참된 자유와 회복이 주어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환대가 되는 교회와 성도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신 후,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보내지셔서 희년을 성취하여, 곤고한 죄인들에게 참된 자유와 회복을 가져다주신 분입니다. 희년이 속죄일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이 땅에 진정한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반역한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환대로부터 구원과 자유와 회복이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환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환대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구원도 없었습니다. 죄인들, 억눌리고 곤고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너그러운 받아주심이 오늘 우리를 있게 하였습니다. 아들을 보내어 죄인들을 환대하신 하나님은, 이제 교회를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의 환대가 되게 하십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환대를 통해 하나님은 이 땅에 자유와 회복을 주시기 위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환대는 단순한 사역을 넘어서는,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