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5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마20:20-34)

by 김일호목사 posted Aug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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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 20:20-34

2021.8.15.

 

 

 

 

맞이하기

 

 

*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할지 나누어 봅시다.

- 섬기는 자와 종으로서 살아가는 삶으로 한 주 동안 어떻게 순종할지 이야기 해 봅시다.

 

 

 

함께 기도하기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 20:20-34

2021.8.15.

 

 

들어가며

예수님은 계속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예루살렘에서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여느 때와 달리 이에 대한 제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나타나지 않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초점이 여전히 크게 어긋나 있음을 보여줍니다.

 

1. 제자들의 헛된 기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이 어머니는 자신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청탁을 하였습니다. 이 어머니도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십자가까지 예수님을 따라갔던 매우 신실한 여인들 중 하나였습니다(27:55-56).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즉위가 가까워오자 아들들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권력과 권세를 얻는 길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의 왕으로서 죄인들을 대신한 심판과 진노의 잔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26:39).

예수님은 이러한 잔에 동참할 수 있겠냐고 물으십니다. 호기롭게도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받으실 잔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앞으로 왕권을 가져오는 일에 어느 정도 희생이 있을 것은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처럼, 이들도 주님을 그렇게 따를 수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2. 종으로 오신 예수님

이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분개했습니다. 이미 제자들 사이에 권력 구도에 대한 관심이 가득 차 있었던 터라 야고보와 요한의 돌출행동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을 다시 불러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제자들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어떻게 권세를 마구 휘두르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힘이 곧 질서인 세상에서, 권력자들의 횡포 아래 많은 백성은 신음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제자들의 동기 또한 이방인들과 그 바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권세를 부리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 가운데도 동일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르실 천국은 이방인의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른 질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큰 자먼저 된 자섬기는 자, ‘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높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대신하여 내어주시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왕으로 선언되신 자리는 십자가였습니다. 그 왕좌의 우편과 좌편에는 강도들이 같이 달렸습니다(27:37-38). 예수님께서는 가장 치욕스런 십자가에서 아무런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종이 되어,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섬기는 자’, ‘은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의 현실이고 삶의 모습이었습니다(2:5-8).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타나는 길가의 시각 장애인들은 제자들과 그 시대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도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은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눈을 뜨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천국의 새로운 가치와 질서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십자가라는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을 따르지 말고, 묵묵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섬기는 자와 종이 되는 새로운 삶의 방향과 실천이어야 합니다(5:13-15).